[기획연재 | 선택이 사라지는 순간들] ③ 감정이 폭주하거나, 반대로 멈춰버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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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선택이 사라지는 순간들] ③ 감정이 폭주하거나, 반대로 멈춰버리는 날

 

“내가 왜 이러지”라고 자책하기 전에… 인간의 몸은 위협 앞에서 ‘자동 모드’로 전환되도록 설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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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웬만하면 참고 넘어간다. 회사에서 한마디를 삼키고, 길에서 부딪혀도 “죄송합니다”를 먼저 말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피곤한 몸을 끌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어떤 날은, 정말 사소한 일 하나에 감정이 훅 치솟는다. 친한 사람의 말투가 유난히 날카롭게 들리고, 메신저의 ‘메시지 확인 후 답변이 없는것’ 하나가 마음을 뒤집어 놓고, 대수롭지 않은 지적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나를 보면서도 당황하는 말을 내뱉는다. “아니, 그게 왜 그렇게 어려워?”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마.” 말이 세진 뒤​에야 깨닫는다. 내 마음이 아니라, 내 몸이 먼저 반응해버렸다는 것을.


반대로, 전혀 다른 형태로 무너지는 날도 있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메시지 하나 답장하는 것도 버겁고, 씻는 일조차 큰 과제처럼 느껴진다. 침대에 누워 “일어나야 하는데”를 되뇌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사람은 자신을 더 몰아붙인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르지?” “의지가 없는 건가?” 그런데 그 질문이 오히려 더 깊은 구덩이를 만든다. 이미 에너지가 바닥났는데, 자책으로 마지막 연료까지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감정의 폭주와 무기력한 멈춤은 얼핏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놀랍도록 비슷한 뿌리를 공유할 때가 많다. 핵심은 ‘성격’이 아니라, 몸이 위협을 감지했을 때 자동으로 켜지는 생존 모드다.

사람의 스트레스 반응은 단순히 “기분이 나빠지는 현상”이 아니다. 외부의 자극이든 내부의 생각이든, 우리 몸이 균형이 깨졌다고 판단하면 신경계와 호르몬 시스템이 함께 작동한다. 빠르게는 교감신경과 부신을 통해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노르에피네프린 같은 물질이 분비되고, 조금 더 느리게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을 통해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조절된다. 이 반응은 원래 “위험에서 살아남기”에 최적화돼 있다.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근육이 긴장하며, 주의가 좁아지고, 몸은 싸우거나 도망가거나(혹은 얼어붙는) 방향으로 준비한다.

 

문제는 현대인의 ‘위협’이 맹수나 전쟁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마감, 평가, 관계의 불안, 비교, 경제적 압박처럼 몸으로 만질 수 없는 위협이 하루 종일 끊기지 않는다. 그러면 생존 모드는 짧게 켜졌다 꺼지는 것이 아니라, 애매한 형태로 오래 유지된다. 이 상태에서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던 기능이 약해지기 쉽다. 실제로 스트레스 반응을 다루는 생리학 설명에서는 편도체(위협 신호 처리)와 전전두엽(충동 억제·의사결정 조절)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정리한다. 쉽게 말해, 몸이 “위험”이라고 느끼는 순간에는 ‘생각으로 조절하는 힘’이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사람은 두 갈래로 많이 무너진다. 하나는 폭주다. 말이 빨라지고, 표정이 굳고, 상대의 의도를 나쁘게 해석하며, 뭔가를 “지금 당장” 해결하려 든다. 평소의 내가 아니라 ‘방어하는 나’가 앞에 나온다. 다른 하나는 정지다. 몸이 멈춘다. 해야 할 일을 아는데도 시작이 안 된다. 머리는 계속 돌아가는데 손발이 무겁다. 이 멈춤 역시 게으름이라기보다, 몸이 에너지를 아끼고 위험을 피하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나만 이런가’ 싶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모양으로 흔들린다. 다만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나를 탓하는 결론’으로 가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 “참아야지”로만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참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참는 행위가 오히려 내부 긴장을 더 키운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도덕적인 결심이 아니라, 몸이 몸을 진정시키는 작은 장치다. “내가 왜 이러지”라고 자신을 심문하기 전에, 먼저 몸에게 “이제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다.


방법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첫째,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을 ‘사건’으로 키우지 말고 ‘신호’로 읽는다. “지금 내가 예민해졌구나”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내 안에서 자동 모드가 켜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인정은 패배가 아니라, 핸들을 다시 잡기 위한 첫 동작이다.


둘째, 호흡을 길게 내쉬는 쪽으로 아주 짧게 방향을 틀어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것보다, 내쉬는 시간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가는 게 도움이 되는 사람도 많다. 이를 ‘부교감 쪽으로 몸을 돌린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핵심은 어렵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몸이 과열돼 있다면, 내쉬는 숨으로 브레이크를 살짝 밟는 것이다. 스트레스 반응이 신경계·호르몬계의 연동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알면, “숨을 고르는 게 무슨 소용이야”라는 냉소가 조금 줄어든다.

 

셋째, 폭주 쪽이라면 ‘말’을 늦추고, 정지 쪽이라면 ‘몸’을 아주 작게 움직여보는 것이 좋다. 폭주할 때는 말이 상황을 키운다. 그럴 땐 “10분 뒤에 얘기하자”라는 문장 하나가 관계를 살린다. 정지할 때는 생각이 상황을 키운다. 그럴 땐 결심이 아니라 동작이 필요하다. 창문을 열고 물 한 잔을 마시거나, 세수만 하거나, 옷만 갈아입는 수준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면 충분하다. 멈춰 있는 몸에 “우리는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따뜻한 해석이다. 감정이 폭주하는 날은 대개 내가 나쁘거나 약해서가 아니다. 몸이 지키려는 것이 있었던 날이다. 멈춰버린 날도 대개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몸이 버티기 위해 에너지를 아낀 날이다. 오늘의 나를 설득해야 할 대상처럼 대하기보다, 회복이 필요한 사람처럼 대하면 좋겠다. 그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 바뀌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스트레스의 재료를 다룰 예정이다. 시간이 몰아칠 때, 비교가 심해질 때, 타인의 시선이 내 결정을 흔들 때 우리는 왜 유독 ‘나답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가. 그리고 그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짚어보겠다.


최준성 기자 rent_@naver.com  jebo@news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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