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출장중 베트남서 별세...의식 회복 못해
민주평통, 오는 27일 고국으로 돌아올 예정
40년 가까이 민주 진영의 '거목'이었던 이해찬 전 총리는 오는 27일 고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사진=민주평통자문회의)
(뉴스9=이호철기자) 민주평통 부의장으로 베트남 출장 중 급격한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심근경색 시술을 받은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오늘 별세했다.
민주평통은 언론 공지를 통해 "현지 의료진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지만, 이 수석부의장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현지시간 1월 25일 14시 48분 운명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유가족 및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고 유가족분들께 따뜻한 위로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고인은 7선 의원 출신으로 국무총리까지 지냈고, 작년 10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됐다.
이해찬 전 총리가 73세의 나이로 오늘 오후 영면에 들었다.
대학시절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른 청년 이해찬이 대중에게 각인된 건, 정치권에 입문 한지 1년 만인 1989년, 전두환씨를 상대로 한 5공 청문회였다.

이해찬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1989년 12월 31일, 5공비리특위 연석청문회) "전두환 증인을 상대로 해서 이 청문회를 한다는 것 자체에 큰 기대를 걸지를 않았었습니다. 속된 말로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노무현재단)
이때 날카로우면서도 정제된 언변으로 노무현 당시 의원과 함께 단번에 '스타 의원'으로 발돋움했다.
모두 7번의 총선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을 만큼 개인적인 정치 이력도 독보적이며, 35년간 민주진영 4명 대통령들의 전략가로서 '킹메이커'로 평가받는다.
김대중 정부에서 40대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하며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폭의 개혁을 단행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책임총리'로서 국정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04년 10월 국회 대정부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사진=뉴스9)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2004년 10월, 국회 대정부질문)는 "한나라당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고 국민들이 다 아시는 것처럼 지하실에서 차떼기를 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을 들여온 정권이 아닙니까? 그런 정당이 어떻게 좋은 당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며 민주진영의 존경받는 정치인이자 전략가였다.

2018년 8월 25일 당대표로 선출된 후 당기를 받은 이해찬 당시 신임 당대표. (오른쪽) 전임 당대표 추미애 대표.(사진=뉴스9)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당대표로서 '시스템 공천'을 내세우며, 180석이라는 초유의 선거 결과를 달성했다.
이재명 대통령과도 각별한 관계였다. 이 대통령에게 쏟아지던 화살을 지속적으로 막아주면서 친이재명 진영의 상징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40년 가까이 민주 진영의 '거목'이었던 그는 오는 27일 고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호철 기자 josepharies7625@gmail.com jebo@news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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